좌표가 잡히지 않는 공간은 '공포'다.
도무지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은 더 큰 공포다.
공간은 발이라도 붙어 있지만, 시간은 그저 붕 떠 있다.
그래서 존재의 본질은 '불안'이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다.
하이데거의 '세계-내(內)-존재(in-der-Welt-Sein)'란 시간과 공간에
아무 대책 없이 '내던져짐(Geworfenheit)'을 의미한다.
내던져짐을 한자로 표현하면 '피투성(被投性)'이다. '
아무 곳도 아니고, 아무 곳에도 없다'라고 하는 불안의 존재는
피투성이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이 불안을 견디지 못해
인간은
'여기와 지금(here and now)'이라고 하는,
존재의 확인을 위한 좌표를 정하기
시작한다.
시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시간을
'분절화'한다.
시간을 숫자로, 마치 셀 수 있는 물체처럼 만든 것이다.
일단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갠다. 하루는 모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된다 그리고 365일이 모여 1년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1년이 매번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아니, 반복된다고 믿는 것이다.
반복되는 것은 하나도 안 무섭다.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 해가 잘못되면 그 다음 해에 다시 잘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가 오는 것을 매번 그렇게 축하하며 반기는 것이다.
- 김정운 저, ‘에디톨로지(Editolog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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