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른다.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에 반응하도록 훈련된
인간의 뇌에 독서는 너무 지루한 행위다.
글자를 배우고,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고,
문단과 문단을 엮고, 차근차근 그 말을 경청하고,
선사시대라면 그 사이에 사자에게 잡아 먹히고도
남을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책 없이도 잘 살아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므로,
무한한 책의 세계가 주는 지혜와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 책의 세계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면 된다.
그렇게 걸어 들어가는 모두가 병든 인간인 것은 아니다.
병들지 않은 인간도 책을 읽는다.
병들지 않은 인간은 책의 세계를 관광객처럼 둘러보고
자신에게 필요한 조각을 찾은 뒤 값을 치르고 길을 나선다.
그러나 병든 인간은 책의 세계에 기꺼이 자신을 바친다.
어떤 이는 자신이 제물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제물이 되어서 책의 세계의 작은 벽돌 하나로
남아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세계가 번창하기를 소망한다.
같은 이유로 나 역시 사람들을 책의 세계로
유혹하고 싶어 한다.
사실 책 속에는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은밀한 지혜가 숨어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고 말함으로써
애서가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변호하고 책이 사람을
기적적으로 변화시킨다는 환상을 부순다.
그것은 그가 책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며,
그 간절한 사랑이 개발의 논리로 훼손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김겨울 저, '책의 말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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